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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와 '골똘히 생각하기'

오정환 2024-04-01 조회수 118

독서 편식은 정신 불균형 초래

질문과 사색이  통찰과 창의 일으켜

   연구실을 찾아오는 분들이 물었다. "이 책을 다 읽은 겁니까?", "기억은 나요?" 같은 질문이다. 물론 다 읽지 않았고, 읽었다고 해서 모두 기억나는 것도 아니다. 가끔 이미 읽은 책을 모르고 주문할 때도 있다. 물론 한두 페이지 넘기다 보면  기억나긴 하지만 우리 뇌는 잘 잊어버린다. 


   음식을 생각해 보자. 일주일 전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기억하지 못해도 그때 먹은 음식물을 모두 소화하여 살과 피를 만들었다. 책도 마찬가지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떤 내용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더라도 이미 그 책은 '나'를 만들었다. 인체가 섭취한 음식물의 결과이듯 정신은 독서의 결과다. 굶으면 몸이 죽고 독서하지 않으면 정신이 죽는다.


  음식은 어떤 과정을 거쳐 살과 피를 만들까? 음식이 입으로 들어오면 씹어서 넘기기 좋게 만든다. 목으로 넘긴 음식물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장으로 들어간다. 위장은 위산을 분비하고 연동운동을 하여 음식물을 죽 상태로 만든다. 음식은 십이지장과 소장을 거치며 소화효소의 도움을 받아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무기질, 비타민 같은 영양소로 나뉜다. 영양소는 소장에서 간으로 이동하고 찌꺼기는 대장으로 넘어가서 똥이 된다. 

 

  간으로 흘러간 영양성분은 인체에서 활용 가능한 성분으로 성질이 바뀐다. 예를 들어 탄수화물은 포도당이 되고, 단백질은 아미노산이 되는 식이다. 이렇게 바뀐 성분들은 혈관을 타고 세포 속으로 들어가 에너지 원이 되기도 하고 인체를 구성하는 피부와 살, 뼈, 손톱, 모발 따위가 된다. 섭취한 음식물이 체질을 이룬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아도 스스로 소화하여 내 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책은 어떤 소화 과정을 거칠까? 음식물을 입으로 먹는다면 책은 눈으로 읽는다. 눈으로 들어온 활자는 시신경을 타고 후두엽 시각피질로 들어가 정보가 된다. 뇌는 소화기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음식물이 소화기관을 거치며 인체가 활용 가능한 영양소와 배설물로 나뉘듯이 뇌는 시신경을 타고  들어온 활자를 정보로 인식하고 필요 없는 것과 필요한 것을 분류한다. 필요한 정보를 받아들이면 비로소 내 것이 된다음식물이 체질을 결정했다면 책은 정신을 결정한다. 

 

 편식하면 영양소 불균형으로 인체에 해롭듯이 책도 한 방향으로만 읽으면 균형감을 잃고 편협한 사람이 된다. 음식물은 소화과정에서 효소 도움을 받는다. 소화효소가 분해하지 않으면  대장으로 넘어가 배설물이 된다. 산해진미도 효소가 없으면 소용없다. 


  독서할 때 소화기관의 효소와 같은 역할을 무엇이 할까? 질문과 사색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질문과 사색이 없으면 소화 안 된 음식물이 되는 것이다. 꼭꼭 씹어 먹어야 소화가 잘 되듯 책을 읽을 때는 '깊이 읽기'가 중요하다. 깊이 읽는다는 것은 질문하고 골똘히 생각한다는 뜻이다. 즉 '깊이 읽기' 와 '골똘히 생각하기' 가 없으면 제대로 독서했다고 볼 수 없다. 


  질문과 사색은 새로 들어온 정보를 단순히 수용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가공하고 추론하고 편집하고 통합하여 새로운 통찰과 창의를 일으킨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의 말을 기억하자. "돌을 쌓아 올렸다고 집이 아니듯 정보를 쌓아 올렸다고 해서 과학이 아니다"